괘의
밝음이 땅 속에 들어가 있듯이 소인이 세를 얻어 폭정을 하는 암울한 시기에는 스스로를 그믐같이 어둡게 하여 무리를 화합시키고 세상을 서서히 밝혀 나가라(用晦而明).
괘명과 괘상
명이괘는 곤지(坤地)☷의 외괘와 이화(離火)☲의 내괘로 구성됩니다. 해가 지하로 들어가듯 밝음이 땅 아래로 하강하여 손상된 상태를 상징하므로 '명이(明夷)'라 명명되었습니다. 본 괘의 구조적 특징은 은말주초(殷末周初) 시기의 역사적 맥락을 반영하여 괘사와 효사가 형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서괘
晉者는 進也니 進必有所傷이라 故로 受之以明夷하고
진자 진야 진필유소상 고 수지이명이
진(晉)이란 나아감이니, 나아가면 반드시 다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명이(明夷)로 받고
진(晉)은 전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적절한 후퇴의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만을 추구한다면, 불가피하게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화지진괘 이후에 지화명이괘가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밝음이 손상되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괘사
明夷는 利艱貞하니라.
명이 이간정
명이(明夷)는 어려운데 바르게 함이 이롭다.
명이(明夷)는 빛이 지하로 하강하여 그 광명이 손상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현명하지 못한 통치자의 부당한 정치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고 현인(賢人)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시기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진중하게 처신하며 정도를 지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즉, 시련을 인내하면서도 올바른 도리를 견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 단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사
彖曰 明入地中이 明夷니
단왈 명입지중 명이
內文明而外柔順하야 以蒙大難이니 文王이 以之하니라.
내문명이외유순 이몽대난 문왕 이지
利艱貞은 晦其明也라 內難而能正其志니 箕子 以之하니라.
이간정 회기명야 내난이능정기지 기자 이지
단전에 말하였다. “밝음이 땅 가운데 들어감이 명이(明夷)니, 안은 문명하고 밖은 유순해서 큰 어려움을 무릅쓰니 문왕(文王)이 그러하였다. 어려운데 바르게 함이 이로운 것은 그 밝음을 그믐으로 하는 것이다. 안으로 어려우면서 능히 그 뜻을 바르게 하니 기자(箕子)가 그러하였다.”
지하로 하강하는 태양의 은유는 정치적 혼란기의 상징적 표상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기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문명성과 외면의 순응성을 통해 시대적 난관을 극복한 대표적 인물이 문왕입니다. 문왕은 은나라 말기 주왕의 폭정 시기에 서방을 통치하던 주나라의 백작이자 은나라의 삼공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주왕의 폭정에 대한 간언으로 인해 유리 지방의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그의 덕치는 민심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문왕이 수감 기간 중 역경의 괘사를 연구하여 저술했다는 기록은 학술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료적 가치를 지닙니다.
'올바른 길을 추구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자신의 빛나는 재능을 겸손하게 숨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뛰어난 능력과 지혜가 있더라도 때로는 이를 드러내지 않고 신중하게 처신하며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내적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켰던 대표적 인물이 기자(箕子)입니다. 기자는 주왕의 숙부(제을帝乙의 동생)로서, 당시의 부당한 통치 체제 하에서 전략적으로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자신의 본분을 지켜냈습니다. 후에 주나라가 건국되고 무왕(武王)이 기자를 찾아와 국가 통치의 원칙에 대해 자문을 구했을 때, 기자는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정치철학을 전수했습니다. 이 귀중한 통치 원리는 《서경(書經)》의 「주서(周書)」편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괘상사
象曰 明入地中이 明夷니 君子 以하야 莅衆에 用晦而明하나니라.
상왈 명입지중 명이 군자 이 이중 용회이명
상전에 말하였다. “밝음이 땅 가운데 들어감이 명이(明夷)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무리에 다다름에 그믐을 써서 밝힌다.”
象曰 天地不交 否니 君子 以하야 儉德辟難하야 不可榮以祿이니라.
상전에 말하였다. “천지가 사귀지 않는 것이 비(否)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덕을 검소히 하고 어려움을 피해서 가히 녹을 받는 것으로써 영화를 누리지 않는다.”
象曰 天下有山이 遯이니 君子 以하야 遠小人호대 不惡而嚴하나니라.
상전에 말하였다. “하늘 아래 산이 있는 것이 돈(遯)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소인을 멀리하되 악하게 아니하고 엄하게 하여야 한다.”
효사 및 효상사
초구(初九)
明夷于飛애 垂其翼이니 君子于行애 三日不食하야 有攸往애 主人이 有言이로다.
명이우비 수기익 군자우행 삼일불식 유유왕 주인 유언
초구는 날고자 하는데 밝음이 상함에 그 날개를 드리우니, 군자가 감에 3일을 먹지 않아서, 가는 바를 둠에 주인이 말이 있도다.
초구는 내괘 이화(離火)☲의 최하단에 위치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이화(離火)☲를 향해 상승하고자 하나, 초구의 변화로 인해 간산(艮山)☶이 형성되어 정지하게 되므로 날개를 접게 됩니다. 명이(明夷)괘의 기저에 자리한 초구는 내괘 이화☲의 통찰력으로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예견하고, 전략적으로 은둔을 선택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이에 초구와 상응하는 육사(주인)는 협력이 불가능한 상황을 유감스럽게 여기며 언급하게 됩니다.
은나라의 통치기에 주나라의 무왕이 천자인 은나라 주왕의 정벌을 시도했을 당시, 고죽군의 자제인 백이와 숙제는 신하의 군주 시해가 부당함을 상소하였습니다. 무왕의 측근이 이들의 처형을 건의하였으나, 태공망은 이들의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여 보호하였습니다. 주나라가 천하를 장악한 후, 백이와 숙제는 도의적 신념에 따라 주나라의 녹봉을 거부하고 수양산에 은거하여 채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는 역사적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처럼 효사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귀한 선택을 반영합니다. 이 두 군자는 원칙에 따라 주(周)나라의 녹봉을 거부하였고, 이에 무왕은 그들의 결정을 깊이 존중하면서도 안타까워했습니다. 초구의 변화로 내괘 이화(離火)☲가 간산(艮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비상을 멈추고 산속으로 은거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象曰 君子于行은 義不食也라.
상왈 군자우행 의불식야
상전에 말하였다. “군자가 가는 것은 의리가 먹지 않는 것이다.”
육이(六二)
明夷에 夷于左股니 用拯馬 壯하면 吉하리라.
이우좌고 용증마 장 길
육이는 밝음이 상함에 왼쪽 다리를 상하니, 구원하는 말이 건장하면 길할 것이다.
육이는 내괘의 중정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록 밝음이 손상된 상황이나, 내괘에서 중정함을 유지하며 덕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심각한 손상 없이 단지 뜻을 실현하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왼쪽 다리를 상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중정한 육이에게 강건한 지원자가 있다면, 다시 육이의 뜻이 세상에 구현될 수 있어 길합니다. 이때 육이를 돕는 말은 구삼의 양(陽)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은말주초(殷末周初) 시기에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은나라 주왕의 폭정으로 인해 유리(羑里) 지방의 감옥에 구금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유로운 활동이 제한되어 '왼쪽 다리가 상한' 상태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지원자, 즉 문왕의 아들인 무왕(武王)이 군사를 일으켜 폭군 주왕을 타도한다면, 문왕의 덕이 실현될 수 있어 길한 것입니다. 문왕은 투옥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시기를 기다리며 중도(中道)의 원칙을 견지했기에 결국 길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象曰 六二之吉은 順以則也일새라.
상왈 육이지길 순이칙야
상전에 말하였다. “육이의 길함은 순함으로써 법하기 때문이다.”
구삼(九三)
明夷于南狩하야 得其大首니 不可疾貞이니라.
명이우남수 득기대수 불가질정
구삼은 밝음이 상함에 남쪽으로 사냥해서 그 큰 머리를 얻으니, 빨리 바르게 할 수 없다.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무왕이 군사력을 동원하여 은나라의 마지막 통치자인 주왕의 부당한 통치를 종식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의로운 통치 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중대한 결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천명을 받은 통치자에 대한 도전은 신중히 접근해야 할 사안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천리의 순리와 민심의 지지를 기반으로 해야 했으며, 정당성이 있다 하더라도 급진적 접근은 지양해야 했습니다. 사회 전반의 안정을 위해서는 기존 체제의 개혁도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질(疾)'이라는 표현은 본래 '병들다'는 의미이나, 문맥상 '신속함'을 지칭합니다.
象曰 南狩之志를 乃大得也로다.
상왈 남수지지 내대득야
상전에 말하였다. “남쪽으로 사냥하는 뜻을 이에 크게 얻도다.”
육사(六四)
入于左腹하야 獲明夷之心하야 于出門庭이로다.
입우좌복 획명이지심 우출문정
육사는 왼쪽 배에 들어가서 밝음이 상하게 한 자의 마음을 얻어서 문밖 뜰에 나서도다.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외괘 곤지(坤地)☷는 은(殷)나라를 상징합니다. 당시 미자(微子)는 주왕의 이복형제로서, 주왕의 폭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간언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미자는 은나라의 신주(神主)를 가지고 왕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象曰 入于左腹은 獲心意也라.
상왈 입우좌복 획심의야
상전에 말하였다. “왼쪽 배에 들어감은 마음과 뜻을 얻는 것이다.”
육오(六五)
箕子之明夷니 利貞하니라.
기자지명이 이정
육오는 기자의 밝음이 상한 것이니, 바르게 함이 이롭다.
은말주초 시기에, 기자(箕子)는 은나라의 폭정 하에서도 탁월한 전략적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주왕의 부당한 통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저항하거나 도피하는 대신, 신중하게 자신의 역량을 은폐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광인을 연기하며 신하의 위치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자신의 도덕적 원칙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보가 바로 '기자의 밝음이 상한 것'을 의미합니다.
象曰 箕子之貞은 明不可息也라.
상왈 기자지정 명불가식야
상전에 말하였다. “기자의 바름은 밝음을 가히 쉬지 않는 것이다.”
기자는 전문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상황에 대처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정신적 혼란 상태를 연출하면서도, 개인의 도덕적 원칙은 확고히 견지하였습니다. 《논어(論語)》 「미자(微子)」편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였습니다.
微子는 去之하고 箕子는 爲之奴하고 比干은 諫而死하니라. 孔子 曰殷有三仁焉하니라.
미자는 떠나가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나라에 세 어진 이가 있었다."
상육(上六)
不明하야 晦니 初登于天하고 後入于地로다.
불명 회 초등우천 후입우지
상육은 밝지 않아서 그믐이니, 처음에는 하늘에 오르고 나중에는 땅에 들어가도다.
상육은 외괘의 최상단에 위치하여 명이(明夷)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밝음이 극도로 손상된 상태를 나타내며, 따라서 그믐과 같은 어둠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최고의 지위에 있으나, 초기의 승천(昇天)은 결국 밝음의 쇠퇴로 인해 하강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상육의 위치는 은나라의 마지막 통치자인 주(紂)왕을 상징합니다. 주왕은 은나라의 천자(天子)로서 초기에는 통치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했으나, 후기에는 폭압적인 통치로 인해 국가 질서를 훼손하였고, 결과적으로 주나라 무왕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늘에 오름'에서 '땅으로 하강'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즉, 처음에는 천자로서 천하를 통치하였으나, 이후 통치의 정당성을 상실하여 몰락하게 된 것입니다. 구삼의 위치에 있는 무왕(武王)이 상육의 주왕을 제압함으로써, 은나라 시대가 종결되고 주(周)나라의 새로운 시대가 개막되었습니다.
象曰 初登于天은 照四國也오 後入于地는 失則也라.
상왈 초등우천 조사국야 후입우지 실칙야
상전에 말하였다. “처음에 하늘에 오름은 사국(천하)을 비추는 것이고, 뒤에 땅에 들어감은 법도를 잃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