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아무리 앞길에 막힘이 없어 승승장구하게 나갈지라도 항상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마라(非禮不履).
괘명과 괘상
서괘
遯者는 退也니 物不可以終遯이라 故로 受之以大壯하고
돈자 퇴야 물불가이종돈 고 수지이대장
돈이란 물러남이니, 물건이 가히 끝까지 물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대장으로써 받고
모든 상황이 영구적인 퇴보 상태로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자연과 사회 현상에서는 극단적 상태가 지속될 경우 필연적으로 반작용이 발생하여, 후퇴 국면에서도 결국에는 새로운 강화기로 전환되는 순환적 특성을 보입니다.
괘사
大壯은 利貞하니라.
대장 이정
대장은 바르게 함이 이롭다.
단사
彖曰 大壯은 大者 壯也니 剛以動故로 壯하니 大壯利貞은 大者 正也니 正大而天地之情을 可見矣리라.
단왈 대장 대자 장야 강이동고 장 대장이정 대자 정야 정대이천지지정 가견의
단전에 말하였다. “대장(大壯)은 큰 것이 씩씩하니 강함으로써 움직이는 까닭에 씩씩하니, ‘대장이 바르게 함이 이로움’은 큰 것이 바름이니, 바르고 크게 해서 천지의 뜻을 가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장은 강건한 양(陽)의 기운이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괘 건천(乾天)☰의 견고한 기반과 외괘 진뢰(震雷)☳의 역동적 움직임이 결합하여 강력한 추진력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강한 기운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운이 올바른 방향을 잃으면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하늘의 도가 정대하듯이, 양(陽)의 강건한 기운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현될 때 비로소 천지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괘상사
象曰 雷在天上이 大壯이니 君子 以하야 非禮弗履하나니라.
상왈 뇌재천상 대장 군자 이 비례불리
상전에 말하였다.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장(大壯)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예(禮)가 아니면 밟지 않는다.”
외괘의 진뢰(震雷)☳가 내괘의 건천(乾天)☰ 위에 위치하여, 강건한 양의 에너지가 역동적으로 표출되는 형상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강력한 기운이 적절한 절제 없이 발현되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군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예(禮)의 기준에 따라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강한 추진력을 발휘할 때에도 예(禮)의 원칙을 준수해야 하며, 예(禮)를 벗어나면 올바른 길(道)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자(程子)는 「역전(易傳)」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雷震於天上하니 大而壯也라. 君子는 觀大壯之象하야 以行其壯하나니 君子之大壯者는 莫若克己復禮라. 古人이 云自勝之謂强이라하고 中庸에 於和而不流와 中立而不倚에 皆曰强哉矯라하니 赴湯火와 蹈白刃은 武夫之勇으로도 可能也어니와 至於克己復禮는 則非君子之大壯이면 不可能也라. 故로 云君子以非禮弗履라하니라.
천둥이 하늘 위에서 울리는 것은 강력한 힘의 표현입니다. 군자는 이러한 '대장'의 상징을 통해 내면의 힘을 발현하되, 가장 큰 힘은 자기 절제와 예의 회복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고대의 현인들은 자기 극복을 진정한 강인함으로 보았으며, 《중용》에서도 균형 잡힌 중용의 길을 '강건함'이라 칭했습니다. 단순한 육체적 용맹, 즉 불속으로 뛰어들거나 칼날을 밟는 것은 무인의 영역이나, 자아를 다스려 예의에 부합하는 것은 오직 군자만이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대장의 경지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군자는 예의에 맞지 않는 행동을 삼가는 것입니다.
《논어》의 「안연(顔淵)」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顔淵問仁한대 子曰 克己復禮爲仁이니 一日克己復禮면 天下歸仁焉하리니 爲仁由己니 而由人乎哉아. 顔淵曰 請問其目하노이다. 子曰 非禮勿視하며 非禮勿聽하며 非禮勿言하며 非禮勿動이니라. 顔淵曰 回雖不敏이나 請事斯語矣리이다.
공자의 제자 안연이 인(仁)의 본질에 대해 여쭈었을 때, 공자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절제하여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단 하루라도 이를 행한다면 세상이 인(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인(仁)의 실천은 타인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에 안연이 구체적인 방법을 여쭈자, 공자께서는 "예(禮)에 맞지 않는 것은 보지 말며, 듣지 말며, 말하지 말며, 행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에 안연은 겸손히 "비록 제가 미흡하나, 이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겠습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효사 및 효상사
초구(初九)
壯于趾니 征하면 凶이 有孚리라.
장우지 정 흉 유부
초구는 발에 씩씩하니, 가면 흉함이 믿음을 둘 것이다(반드시 흉할 것이다).
초구는 괘체의 최하단에 위치하여 강건한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상황이 매우 강성하여 초구 역시 이러한 기세를 따라 적극적으로 행동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초구는 기초적인 위치에 있어 신체로 비유하면 발에 해당하며, 현재는 미약한 기운만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타인의 행동을 맹목적으로 모방한다면, 필연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흉함이 믿음을 둔다'는 표현은 불길한 결과가 확실히 발생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강함만을 신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계에 봉착하게 됩니다. 초효가 변화하여 손(巽)☴이 되므로, 겸양의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象曰 壯于趾하니 其孚窮也로다.
상왈 장우지 기부궁야
상전에 말하였다. “발에 씩씩하니 그 믿음이 궁하도다.”
구이(九二)
貞하야 吉하니라.
정 길
구이는 바르게 해서 길하다.
구이는 내괘의 중심 위치에서 중도(中道)의 원칙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강건한 자질로써 균형 잡힌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므로, 모든 행보가 길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象曰 九二貞吉은 以中也라.
상왈 구이정길 이중야
상전에 말하였다. “구이가 바르게 해서 길함은 중으로 하기 때문이다.”
구삼(九三)
小人은 用壯이오 君子는 用罔이니 貞이면 厲하니 羝羊이 觸藩하야 羸其角이로다.
소인 용장 군자 용망 정 려 저양 촉번 이기각
구삼의 효사는 소인과 군자의 대조적인 행동 양상을 설명합니다. 소인은 강력한 힘을 과시하려 하고, 군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타인을 경시하게 되는데, 이러한 태도를 고수하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숫양이 울타리에 부딪혀 뿔이 걸리는 것과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구삼은 건천(乾天)☰의 최상단에 위치하여 강건한 양의 기운이 극대화된 상태입니다. 중정의 덕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강한 기운을 적절히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인은 자신의 힘만을 맹신하여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며, 군자라 할지라도 중용의 도를 벗어나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 진행하면 양측 모두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충동적으로 울타리에 부딪히는 숫양이 자신의 뿔을 울타리에 걸려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구삼이 태택(兌澤)☱으로 변화하면 양의 성질이 나타나고(兌爲羊), 건천(乾天)☰의 영향으로 숫양(羝羊)의 형상이 됩니다. 또한 구삼이 변화하여 내호괘가 이화(離火)☲가 되면, 이는 뿔이 울타리에 걸리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象曰 小人은 用壯이오 君子는 罔也라.
상왈 소인 용장 군자 망야
상전에 말하였다. “소인은 씩씩함을 쓰고, 군자는 업신여긴다.”
구사(九四)
貞이면 吉하야 悔 亡하리니 藩決不羸하며 壯于大輿之輹이로다.
정 길 회 망 번결불리 장우대여지복
구사는 바르게 하면 길해서 뉘우침이 없을 것이니, 울타리가 터져서 걸리지 않으며 큰 수레의 바퀴(당토)에 씩씩하도다.
象曰 藩決不羸는 尙往也일새라.
상왈 번결불리 상왕야
상전에 말하였다. “울타리가 터져 걸리지 않음은 가는 것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육오(六五)
喪羊于易면 无悔리라.
상양우이 무회
육오는 양을 쉬운데 잃으면 뉘우침이 없을 것이다.
육오는 외괘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나, 양의 자리에 음이 존재하여 그 위치가 적절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초효에서 사효까지 이어지는 강건한 양(陽)의 기운을 제어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육오의 관점에서는 강력하게 전진하는 숫양들의 움직임을 통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외호괘가 태(兌)☱이며, 육오가 변화하더라도 외괘는 여전히 태(兌)☱의 형태를 유지하여 지속적으로 양(兌爲羊)이 집결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처 방안은 군집을 이루어 움직이는 양 무리의 선두를 적절히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나머지 무리들은 자연스럽게 그 방향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象曰 喪羊于易는 位不當也일새라.
상왈 상양우이 위부당야
상전에 말하였다. “양을 쉬운데 잃음은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상육(上六)
羝羊이 觸藩하야 不能退하며 不能遂하야 无攸利니 艱則吉하리라.
저양 촉번 불능퇴 불능수 무유리 간즉길
상육은 숫양이 울타리를 받아서, 능히 물러나지 못하며 능히 나가지도 못해서 이로울 바가 없으니, 어렵게 하면 길할 것이다.
상육은 대장괘의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위치에서는 하위의 강력한 기운들이 집중되는 상황을 적절히 파악하고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마치 숫양이 울타리에 충돌하여 뿔이 걸린 채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는 상황과 유사합니다. 상육이 이화(離火)☲로 변화하면 이는 뿔이 걸린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당장은 유리한 상황이 아니나, 신중하게 대처하여 어려움을 극복한다면 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象曰 不能退不能遂는 不詳也오 艱則吉은 咎不長也일새라.
상왈 불능퇴불능수 불상야 간즉길 구부장야
상전에 말하였다. “능히 물러나지 못하며 능히 나가지도 못함은 헤아리지 못해서이고, 어렵게 하면 길함은 허물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