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의
천상의 바람이 천하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듯이, 백성들의 생활상과 여건을 세심하게 파악하여 적절한 지도와 교화를 제공해야 합니다(觀民設敎). 마치 하늘의 바람이 만물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지나가듯이, 통치자는 백성들의 현황을 면밀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통치를 실행해야 합니다.
괘명과 괘상
외괘는 손풍(巽風)☴이며 내괘는 곤지(坤地)☷로 구성되어 '관(觀)'이라는 괘를 형성합니다. 이는 대지 위로 바람이 불어 만물을 섬세하게 살피듯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관(觀)'이라는 글자는 황새(雚)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세상을 내려다보는(見) 형상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중생들을 자비롭게 보살피는 관세음보살의 정신을 상징하며, 또한 내괘의 음이 사효(외괘 초효)로 발전하여 구오와 상구의 양 군자가 세상을 깊이 있게 살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관(觀)은 또한 정신적 수양을 나타내는 괘입니다. 내괘의 곤지(坤地)☷는 인체의 복부를, 외괘의 손풍(巽風)☴은 호흡(呼吸)을 상징합니다. 자연계에서 천지가 바람을 통해 기운을 순환시키듯이, 인간은 호흡을 통해 내기(內氣)와 외기(外氣)를 순환시킵니다. 이러한 수양의 구체적 방법은 중산간(重山艮)괘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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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괘
臨者는 大也니 物大然後애 可觀이라 故로 受之以觀하고
임자 대야 물대연후 가관 고 수지이관
임이란 것은 큼이니, 물건이 커진 뒤에 가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관으로 받고
지택림(地澤臨)은 양의 기운이 크게 임하고 만물이 성장하는 괘입니다. 이처럼 만물이 충분히 성장한 후에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으므로, 임괘(臨卦) 다음에 관찰을 의미하는 관괘(觀卦)가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괘사
觀은 盥而不薦이면 有孚하야 顒若하리라.
관 관이불천 유부 옹약
관(觀)은 세수를 하고 천신하지 않으면, 믿음을 두어서 우러러 볼 것이다.
관(觀)은 정신수양과 관련된 괘입니다. 관(盥)은 본래 세수한다는 뜻이나, 술잔을 들어 땅에 부어 신(神)을 강림하게 하는 의식을 의미합니다(盥者 進爵灌地 以降神也). 천(薦)은 제수(祭需)를 올리는 것을 뜻하며, 《춘추공양전》에서는 희생(犧牲) 없이 올리는 제사를 천(薦)이라 정의했습니다(無牲而祭 謂之薦).
정신수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극한 정성입니다. 제사를 올리기 전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는 것은 신과 자연에 대한 정성을 최고로 높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제사를 마치고 나면 의례의 번거로움과 완료에 대한 안도감으로 인해 정성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목욕재계를 하고 제수(祭需)를 올리기 전의 순수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 깊은 믿음이 생겨 하늘과 신을 경건하게 우러러보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역전(易傳)」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盥)은 제사의 시작에 손을 씻고 향술을 땅에 붓는 순간으로, 이는 신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천(薦)은 날것과 익은 것을 올리는 때를 뜻합니다. 관(盥)은 일의 시작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정성과 엄숙함을 지극히 다하는 순간이지만, 제물을 올린 뒤 의례가 거듭되어 번거로워지면 마음이 흐트러져 처음 세수할 때의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마음을 잃게 됩니다.
단전은 괘사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단사
彖曰 大觀으로 在上하야 順而巽하고 中正으로 以觀天下니 觀盥而不薦有孚顒若은 下 觀而化也라.
단왈 대관 재상 순이손 중정 이관천하 관관이불천유부옹약 하 관이화야
觀天之神道而四時 不忒하니 聖人이 以神道設敎而天下 服矣니라.
관천지신도이사시 불특 성인 이신도설교이천하 복의
단전의 설명에 따르면, 관찰자는 높은 위치에서 겸손한 자세와 공정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정성스러운 마음가짐만으로도 신뢰가 쌓이고 존경받을 수 있으며, 이는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감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의 질서가 사계절을 통해 완벽하게 유지되듯이, 성인이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바탕으로 가르침을 전할 때 모든 이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괘상사
象曰 風行地上이 觀이니 先王이 以하야 省方觀民하야 設敎하니라.
상왈 풍행지상 관 선왕 이 성방관민 설교
상전에 말하였다. “바람이 땅위를 행하는 것이 관이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방소를 살피고 백성을 보아서 가르침을 베풀었다.”
관괘(觀卦)는 바람이 땅 위로 불어 행하는 상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받아 옛 왕은 바람이 천하를 두루 어루만지며 지나가듯이, 방방곡곡을 살피고 백성들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여 각 상황에 맞는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관괘(觀卦)는 종교적 의미도 담고 있는데, 성인(聖人)은 각각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하여 중생(衆生)의 근기에 맞추어 가르침과 법문을 전했습니다.
관괘(觀卦)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제시해야 합니다. 종교인(宗敎人)의 올바른 자세는 단순한 덕담(德談)과 격언(格言)으로 중생을 매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진정한 구제를 위한 노력과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효사 및 효상사
초육(初六)
童觀이니 小人은 无咎오 君子는 吝이니라.
동관 소인 무구 군자 인
초육은 아이의 봄이니, 소인은 허물이 없고 군자는 인색하다.
초육은 세상을 보는 경지의 가장 낮은 단계를 나타냅니다. 양의 자리에 음이 있어 부적절하며, 가장 아래에 위치하여 어린아이가 세상을 보듯 편협한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인은 본래 그러한 존재이므로 허물이 되지 않으나, 군자가 이러한 상태라면 인색한 것입니다.
象曰 初六童觀은 小人道也라.
상왈 초육동관 소인도야
상전에 말하였다. “초육의 동관은 소인의 도이다.”
육이(六二)
闚觀이니 利女貞하니라.
규관 이녀정
육이는 엿봄이니, 여자의 바름이 이롭다.
육이는 내괘에서 중정한 자리이나, 관괘(觀卦)에서는 정신계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초육이 아이가 보는 것과 같다면, 육이는 세상 이치를 문틈으로 겨우 엿보는 정도입니다. 육이가 소인인 음(陰)으로 중정하기에 여자의 바름이 이롭다고 하였으나, 군자가 이처럼 엿보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이는 추한 상황입니다.
象曰 闚觀女貞이 亦可醜也니라.
상왈 규관여정 역가추야
상전에 말하였다. “엿봄으로 여자가 바름이 또한 가히 추하다.”
육삼(六三)
觀我生하야 進退로다.
관아생 진퇴
육삼은 나의 삶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나도다.
육삼은 관수행(觀修行)의 중요한 단계입니다. 외면적 경지를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은 특별한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합니다. 자아(自我)에 집착되어 가려진 본질적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관건(關鍵)이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참모습을 보고 난 뒤, 큰 그릇이 되지 못하면 물러나 정성스럽게 생업에 충실하고, 큰 그릇이 된다면 더 나아가 천하를 구제하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육삼이 변하면 풍산점(風山漸)괘가 되니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象曰 觀我生進退하니 未失道也라.
상왈 관아생진퇴 미실도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의 삶을 보아 나아가고 물러나니 도를 잃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보아, 자기의 역량을 깨달아 진퇴(進退)를 결정하니, 나아가든 물러나든 도를 잃는 것이 아니다.
육사(六四)
觀國之光이니 利用賓于王하니라.
관국지광 이용빈우왕
육사는 나라의 빛을 보니, 왕에게 손님됨이 이롭다.
육사는 음자리에 음으로 자리잡고 있으며(得位) 외괘의 첫 자리입니다. 육사가 변하면 외괘가 건천(乾天)☰이 되어, 마치 속세를 벗어나 천계(天界)에 들어서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을 크게 잘 헤아릴 수 있어 나라의 재상이 되어 백성을 다스릴 수도 있습니다. 육삼이 자기 자신의 삶을 보는 단계였다면, 육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나라 전체의 빛을 봅니다. 이처럼 세상을 보는 높은 경지에 이르면 천상계의 신명(神明)이 손님으로 대접합니다.
象曰 觀國之光은 尙賓也라.
상왈 관국지광 상빈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라의 빛을 봄은 손님을 숭상하는 것이다.”
구오(九五)
觀我生호대 君子면 无咎리라.
관아생 군자 무구
구오는 나의 삶을 보되, 군자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中正)한 자리입니다. 크게 보는 위치에 있으며(大觀在上), 육삼의 '觀我生'을 통과하고 육사의 '觀國之光'을 거치면서 도탄(塗炭)에 빠진 세상을 두루 살펴봅니다. 구오에서는 다시 자신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할 역량이 되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따라서 구오가 자기 삶을 보는 것은 곧 천하 백성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그릇, 즉 군자라면 허물이 없지만, 소인(小人)이 이 경지에 이르러 자신을 돌아본다면 인색하거나 흉하게 될 수 있습니다.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의 차이, 진정한 종교와 사이비 종교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象曰 觀我生은 觀民也라.
상왈 관아생 관민야
상전에 말하였다. “나의 삶을 보는 것은 백성을 보는 것이다.”
상구(上九)
觀其生호대 君子면 无咎리라.
관기생 군자 무구
상구는 그 삶을 보되, 군자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象曰 觀其生은 志未平也라.
상왈 관기생 지미평야
상전에 말하였다. “그 삶을 보는 것은 뜻이 편안하지 않다.”